놀랍게도 이성계가 마음을 송두리째 빼았긴 여인이 있었으니, 강씨 성을 쓰는 십 대 소녀였다. 사는 곳은 황해도 곡산이었는데 곡산은 함경도에서 도읍인 개경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성계가 고향으로 개성을 오가다 도중에 인연을 맺은 여인이 곧 강씨 소녀였던 것이다.
이성계가 강씨 소녀을 언제 만났는지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대략 1370년 초반에 만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때 이성계는 삼십 대 중반이었고, 강씨는 열여섯 소녀였다. 당시 열여섯이라면 혼기가 찬 나이였지만 이성계는 강씨보다 스물 한 살이나 많았다. 더구나 아내와 여덟 명의 자식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혼을 가능하게 했을까?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서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어느 날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마침 우물가에 있던 소녀가 바가지에 물을 떠주면서 버들잎을 띄워서 건넸다. 그러자 목이 말랐던 이성계는 버들잎 때문에 벌컥거리며 마실 수 없게 되자 버럭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자 소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급히 냉수를 마시면 탈이 날까 봐 버들잎을 띄웠어요. 버들잎을 불어가며 천천히 드세요.”
이 말을 듣고 이성계는 소녀의 지혜에 감탄하여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소녀가 곡산 강씨 윤성의 딸이었다. 그런데 강씨 소녀와 이성계의 인연은 정말 우연히 이뤄진 것일까? 이성계는 생판 모르는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일까?
사실, 강씨 집안과 이성계 집안이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소녀의 삼촌 강윤충은 이성계의 큰아버지 이자흥의 사위였다. 강윤충은 세 명의 부인을 뒀는데, 그중 하나가 이자흥의 딸이자 이성계의 사촌 누나였다. 또 강윤성의 동생 강윤휘의 아들 강우도 이자흥의 사위였다. 이성계의 사촌 누나 둘이 모두 강씨 집안에 시집간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이성계와 강씨 소녀의 만남은 우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두 사람의 결혼이 의도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성계가 첫눈에 강씨에게 매료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강씨의 어떤 면이 이성계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우물가 일화에서는 강씨의 지혜에 매료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사실, 강윤성 집안사람들은 인물이 좋았다. 강윤성의 동생 강윤충은 개경에 소문이 날 정도로 미남이었다. 심지어 충혜왕의 왕비 이렌첸빤(덕녕공주)도 강윤충의 외모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또 강씨의 언니도 개경에서 고관대작들과 여러 차례 스캔들을 일으킬 정도로 외모가 출중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아마 강씨도 꽤 미인이었을 것이다.
강씨 소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아리따운 처녀였고, 이성계는 그런 그녀에게 빠진것이다. 이렇게 이성계를 한순간에 사로잡은 여인이 바로 훗날 조선의 첫 왕비가 되는 신덕황후 강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