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부부 사이에 변수가 생긴다. 벼슬이 올라가고 왕의 비서기관인 밀직사의 부사가 되면서 이성계는 일 년 중 많은 기간을 개성에서 머물러야 했고, 결과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부인 한씨가 개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여전히 이성계의 군사적 기반은 함흥에 있었고, 그 기반을 지켜줄 사람은 한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끝에 이성계가 내린 결론은 한 번 더 결혼하여 개성에도 아내를 둬야겠다는 것이었다.(원나라 지배기의 고려에서는 ‘중처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정식 부인을 여럿 둘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두 집 살림에 대한 이성계 입장에서의 변명에 불과하다. 사실 이성계가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성계가 이런 이유로 또 한 번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게다가 첩을 들이는 것도 아니고 정식 혼례를 올리고 부인을 한 명 더 맞이하겠다고 했을 때 본처인 한씨가 찬성했겠는가? 제아무리 남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여자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고려 말에도 부인이 버젓이 있는데 새로운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본처인 한씨가 찬성했겠는가? 제아무리 남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여자라고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고려 말에도 부인이 버젓이 있는데 새로운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부인이 먼저 죽어 재혼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부인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정식 결혼한다는 것은 비상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비상한 상황이라는 것이 고작 개성에 자주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설득력이 없었다.
부인이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아이를 낳지 못한 것도 아니고, 집안이 역적으로 몰린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부인 한씨의 집안이 한미한 가문도 아니고, 안변에서 떵떵거리는 집안인데, 간 큰 짓을 감행했다. 필시 부인 한씨는 만류하거나 강하게 반대했겠지만, 이성계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20년 동안의 순정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친 격이었다. 도대체 왜 이성계는 이런 일을 감행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