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십 대 중반의 소녀였던 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삼십대 중반이던 때였다. 이때 이성계에게는 이미 부인과 자식이 있었다. 첫 부인 한씨는 이성계가 결혼 후 2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사랑한 여인이었고, 그녀 사이 여덟 명의 자녀까지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성계는 갑자기 아내를 한명 더 맞겠다고 공언했다. 그것도 첩이 아닌 정식 부인을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그때까지 오직 한씨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이었다. 한씨는 안변의 호족인 한경의 딸이었다. 한경은 고려 말에 밀직부사를 지냈던 인물이었는데, 밀직부사는 조선시대 승정원 승지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변방 지역 함경도 출신으로 그런 요직에 올랐다면 그의 가문은 함경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명문가였을 것이다.
이성계 또한 함흥의 명문가 자제였으니, 함경도 명문가 자녀들끼리 혼인한 셈이다. 이들의 결혼은 가문의 결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정략결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략결혼이라 해서 반드시 사랑없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집안 간의 정략 인연이지만 금실이 좋은 경우도 있었다. 이성계와 한씨가 바로 그런 부부였다.
이성계와 한씨가 결혼한 것이 1352년쯤인데, 이때 그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으니 혈기방장한 시절이다. 이성계는 두 살 아래 앳된 소녀였던 한씨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고려 말 당시 방귀깨나 뀐다는 남성들은 결혼 이후에도 첩을 거느리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이성계는 결혼 후 20년 동안 다른 여인에게 한눈을 팔지 않았고 또한 6남 2녀의 자녀를 얻었다. 당시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한씨는 열 명 이상의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전쟁이 지속되던 20년 동안 이성계는 장수로 활약하며 원나라 군대와 왜군, 홍건적을 상대로 숱한 전장을 누볐고, 가는 곳마다 승리한 덕분에 벼슬도 높이 뛰었다. 그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청년 장수로 유명했고, 스물일곱 살때 동부면병마사가 되었다. 이후로 고려의 대표적인 무장으로 성장하여 중앙 관직을 재수받았다.
그가 전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동안 부인 한씨는 묵묵히 집안을 지키며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솔을 이끌었다. 그리고 전장에서 지쳐 돌아온 이성계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그야말로 고난을 함깨한 조강지처이자, 이성계의 유일한 연인이었다.